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카틴 학살 (문단 편집) === 연합군의 묵인 === [[미국]]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이 사건을 듣고 조사관을 파견하여 소련군이 저지른 일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나, 당시 같은 연합국 측인 소련과 미국의 관계를 고려하여 이를 기밀로 처리했다.[* 루스벨트가 소련이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제2차 세계 대전|전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를 공개할 경우 스탈린이 격분해 독일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빠져나갈 것을 우려해 [[https://www.yna.co.kr/view/AKR20120824200800080|이 사실을 은폐하기로 결정하였다.]] [[미국]]은 전쟁 전부터 이미 스탈린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쟁을 해결하기 위한다는 명목으로 [[소련]]의 거짓말과 만행을 묵인하였다.] 이는 [[영국]]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특히 영국은 미국보다도 먼저 통신감청 및 암호 해독을 통해 독일의 매장지 발견 직후 카틴 학살의 실체를 어느 정도는 먼저 접할 수 있었다.[*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 '에니그마'는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나치 독일에 맞서기 위해서는 소련과의 협력이 필요했기에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는 폴란드 망명정부의 수장인 [[브와디스와프 시코르스키]] 장군에게 행방불명자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 사실을 확인한 폴란드 망명정부는 [[국제적십자위원회]](ICRC)에 카틴 숲의 집단 매장지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하였으며 실종된 폴란드군들이 어디로 갔는지를 소련에 공식적으로 요구하였으나, 소련은 1943년 폴란드 망명정부와의 국교를 '''단절'''하는 것으로 대답했다. 어차피 거짓말을 해 봐야 먹히지 않을 게 분명하며 진실을 말하면 아무리 사정이 절실해도 자국 포로 수만 명을 학살한 국가와는 동맹을 유지할 가능성이 전혀 없음을 잘 아니 아예 관계를 끊어버린 것이다. 이쯤 되자 다른 나라들도 어느 정도 사건의 진상에 대한 냄새를 맡게 되었다. 영국은 이러한 소련의 국교 단절에 불쾌함을 느꼈으며 미국 또한 대독일전을 같이 수행하는 폴란드 망명정부에 대한 소련의 태도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때문에 이는 [[테헤란 회담]]과 [[얄타 회담]]을 거치면서 소련-폴란드 간 국경선 확정 문제로 불거지기도 한다. 그러나 일단 나치를 먼저 때려잡고 나서 나중에 책임을 묻자는 의견이 대세가 되어 일단 침묵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